스토리펀딩

주변 번화가라고는 없는, 국립공원 산자락 아래 한적한 대학교.

산 어귀에서, 화단 뒤에서, 책 들고 가방 멘 학생들 사이에서, 건물 틈새에서..어느 날부터 한 마리 두 마리씩, 눈치를 보는지 아닌지, 뽐내듯 젤리 발로 당당한 걸음을 내딛으며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대학교에 나타났던 다람쥐는 도망갔고, 들개는 산과 뉴스를 타며 떠나갔고, 멧돼지는 쫓겨갔지만, 건물 한 켠에서 볕이나 쬐던 고양이들은 학교에 남았습니다.

이것은 대학교에 나타난 고양이들과 대학시절을 지나는 학생들의 작은 공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귀엽다'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는지)사람을 위협하지도, 사람에게서 도망가지도 않고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는, 강의실을 기웃거리는, 만날 때마다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들이 너무나 귀여웠거든요. 우리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말을 걸고, 사진을 찍고, 학교 SNS에 사진을 올리며 고양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고양이는 정말 귀엽습니다.

그리고 '걱정' 이
나타났습니다

춥고 배고파질 때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와 그 때문에 놀란 학우, 아기 고양이들에게 호의로 건네진 염분과 기름기 많은 사람 음식, 치워지지 않는 빈 밥그릇과 쓰레기, 건물 안에 남겨져 있는 배설물까지. 우리의 고양이 이야기가 다르게 나왔습니다. 고양이 문제가 정말 걱정됩니다.

그러나 귀여움도, 걱정도 제각기 나올 뿐이었습니다. 뭉치지 않은 목소리들은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태어나 자라난 아기 고양이들이 병으로, 사고로 죽어갈 때 우리는 흩어져 있어 우왕좌왕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도와달라는 목소리와 청결을 말하는 목소리는 그저 뒤섞일 뿐이었습니다.

몇 차례 아픔을 겪은 우리는 '공존'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은지, 이예진 학우를 필두로 여러 학우가 모였습니다. 우리는 고양이들을 바로 도울 수 있게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다행히 많은 학우들의 도움으로 첫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이 후원금은 우리의 첫 목표, 미관과 위생 문제 해결을 위한 고양이 급식소 제작에 쓰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마더캣에서 윗부분이 화분처럼 보이는 '낮은둥지' 디자인을 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목재를 구하고, 잘라 다듬고, 표면에 로고를 새겨 제작소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고양이들이 더 이상 건물 안팎의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되고, 학우들이 밥을 챙겨줄 때도 쓰레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겨울집도 제작하였습니다. 학교 어디에 있어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도록 외관에 신경을 썼습니다.

설치한 바로 다음날엔 학교 본부에서 이 급식소와 겨울집을 모두 철거해 버리는 일도 겪었습니다. 곧 학교 본부에서도 저희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해 주어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요. 지금은 다시 설치된 급식소와 겨울집과 학교 건물들 사이에서, 고양이와 학생들은 마주칠 때마다 조용히 서로를 반기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고양이와 학생의 환경 만들기입니다. 학교에는 고양이들이 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어떤 고양이들은 학교 터에 자리를 잡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합니다. 이 고양이들이 학교와 학우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 그러면서도 학교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의 또 다른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급식소에 먹이를 공급하고, 주변을 깨끗히 정돈하고,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목걸이를 채워 고양이와 그 영역을 돌보아 주고자 합니다.

방학이 되기 전 우리는 학우들에게 후원금을 모으고, 배지를 만들고 쿠키를 구워 한 차례 후원 판매전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이 금액과 후원받은 사료로 활동비를 충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큰 목표도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학교를 떠난 뒤에도, 고양이와 학생이 행복하게 공생을 오랫동안 지속하도록 길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다음 학우도, 그 다음 학우들도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도록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프로젝트의 오랜 지속을 기원하며 교정을 걷고 있습니다. 사료 봉지와 물통, 쓰레기봉투를 들고.

주변 번화가라고는 없는, 국립공원 산자락 아래 한적한 대학교. 그 사이를 몇 년간 거닐 우리들, 그 사이에 빼꼼, 나타났다 사라지는 작은 고양이들.

여러분도 우리와 잠시 함께
걸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